제수씨는 간호사

제수씨는 간호사

일딸 0 464

아버지가 물려주신 재산이 좀 있어 놀고먹는 백수다. 그렇다고 완전한 백수는 아니다. 왜냐고? 두 개의 빌딩 그리고 대형슈퍼를 관리한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빌딩이라 수입은 얼마 안 된다. 



주변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서면서 대형슈퍼에서 수입이 짭짤하다. 하루에 한 바퀴 돌면서 관리자들 만나는 일의 전부다. 



한마디로 팔자 편한 인생이다. 



이름에서 혹시 느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오입질에 기집질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내 물건이 좀 실하다. 길이와 굵기 그리고 강도가 딱 여자들 질질 싸게 만드는 사이즈라고 어떤 년이 말하더라. 



불혹(不惑)의 나이... 



보통은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을 나이다. 



하지만 요즘 나는 새로운 세상에 빠져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여름... 



예전에 비해 여름이 더 빨리 다가오고 더 덥다. 



경화와 그녀의 딸 미영과 함께 발리를 다녀왔다. 미영은 처음 가는 해외여행에 들떠 정신없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살갗을 태우며 바닷가에서 미영과 놀아주었다. 



밤에는 뜨거운 경화의 육체를 태우며 방에서 놀아주었다. 딸이 잠든 방과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방이지만 그녀는 뜨거웠다. 



4박 5일의 여행은 짧았다. 



돌아오는 길에 홍콩에 들려 두 여자의 선물도 사주었다. “노예”로 시작된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노예의 딸”도 “노예”라고 했던 그녀의 딸로 인해 “가족”이 되어버렸다. 



법적으로는 남남이지만 우리는 이미 “가족”이다. 미영이 친딸은 아니지만 요즘은 내 딸처럼 느껴진다. 





“정(情)”이 무섭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평소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수경은 내 휴가기간 동안 쉬지 못했다. 외각에 있던 빌딩하나를 팔고 시내 중심가에 모텔을 하나 구입했다. 그녀는 리노베이션을 하는 건설공사 담당자들 때문에 바빴다. 



공사대금을 지급하고 공사 진척을 내게 보고했다. 



나는 그녀를 믿는다. 



그녀가 회사 통장을 모두 관리한다. 수경의 꼼꼼한 성격에 빈틈은 없다. 세무사도 놀랄 정도였다. 사실은 일이 막바지가 아니었다면 그녀에게도 휴가를 주었을 것이다. 그녀의 개인사정도 있었다. 



야간대학을 다니는 그녀가 방학동안 계절 학기를 수강한 것이다. 능력 개발을 위해 애쓰는 그녀가 예쁘다. 



미안함과 기특함에 홍콩에서 그녀의 선물도 준비했다. 



휴가 후 첫 출근을 그녀가 환한 얼굴로 반긴다. 나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내밀며 그녀의 수고에 대한 인사를 한다. 





“수고가 많았어. 미스 한!” 



“잘 다녀오셨어요. 사장님!” 





공식석상에서 그녀는 “미스 한”이고 나는 “사장님”이다. 





비공식석상에서는 물론 “오빠”와 “수경”이지만, 여기는 사무실이다. 내 사무실은 서초동 일식집과 방배동 주택 그리고 분당 우리마트의 정중앙에 있다. 



내 이동의 편리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녀의 오피스텔도 사무실 근처다. 강남은 임대료가 너무 비싸다. 





“공사 거의 끝났다면서...계절학기는?” 



“네. 주말에 오픈 가능할 것 같아요. 계절학기는 이번 수요일까지...선물?” 



“풀어봐. 미스 한 생각나서...” 



“고마워요. 사.장.님.” 





그녀가 살짝 삐친 표정으로 입술을 내밀며 윙크한다. 



수경은 경화를 안다. 나와 함께 사는 그녀를 질투하는 것이다. 그녀도 나와 함께 살고 싶어 했었다. 경화보다 수경이 더 오래 내 곁에 머문 여인이다. 



나와 살을 맞대고 산 시간도 더 많다. 그래서 경화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미영이는 귀여워하지만...미영이가 좀 귀엽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았다. 



그녀는 포장을 조심스럽게 풀고 박스를 연다.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여름용 하늘색 원피스와 속옷 그리고 구두 세트다. 명품이다. 여자에게 쓰는 돈을 아끼지는 않는다. 자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없다. 



법적인 가족이 있지도 않다. 나 죽으면 소용없는 돈들이다. 쓸데없이 낭비를 하지는 않지만 구두쇠처럼 안 쓰고 살지는 않는다. 



그녀가 감격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내 입술에 살짝 입맞춤한다. 사무실이라 격식은 차리고 있지만 직원은 그녀뿐이다. 내가 살짝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꾸짖는다. 





“사무실이야. 미스 한...마음에 들어?” 



“피...너무 예뻐요. 사장님!” 



“조심해. 안에 향수도 있어.” 





그녀가 박스를 안고 있는 것이 불안하다. 그녀는 선물박스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향수병을 찾아냈다. 기쁜 표정으로 향기를 음미한다. 





“휴가는 어쩔래?” 



“음...희수가...” 



“응? 희수가 왜? 무슨 일 있어?” 





내 첫사랑 사촌누나의 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다. 한 동안 내게 연락이 없어 조금 걱정은 되었다. 가끔 수경의 집에 놀러온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희수에게 별일 없음을 전해 들었다. 



원조교제문제로 속을 섞였었는데 이제 좀 안정을 찾은 것이다. 누나와는 그 날 이후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 자형과의 이혼문제도 있고, 예민한 나이의 희수를 생각에 자제했다. 



누나도 내 마음을 안다. 



누나와 나는 서로 전화통화만으로 위안을 삼았다. 





“저기...그러니까 저랑 사장님이랑 함께 바다에 가고 싶다고...” 



“응? 대학 친구들과 여행갈 예정이라며...” 



“사실 별로 친하지도 않고...저도 사장님이랑 가고 싶은데...희수랑 함께 가면...” 





그녀는 뭐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힌다. 



내가 경화와 해외로 휴가를 다녀온다는 말에 없는 친구들과 여행을 만들었던 것이다. 과동아리에서 가는 여름여행이 있지만,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희수랑 함께 가게 되면 불편한 점이 생긴다. 



바로 밤이 문제다. 희수랑 함께 한 방을 쓰면 나와 아무것도 할 수없다. 



귀여운 여자다. 



한 때 강남에서 잘나가는 룸에서 일했던 수경이다. 그 가게에서 넘버원이었다. 강남 일대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빼어난 미모였다. 머리 속이 텅 빈 글래머가 아니었다. 



손님과 어느 정도 대화가 되는 지성도 겸비한 그녀였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는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수경의 손기술과 페라치오는 부처님도 싸게 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그녀가 나와 섹스를 못할지도 모르는 여행이 아쉬운 것이다. 





“함께 가자. 금요일에 모텔 오픈하고, 토요일 출발하면 되겠네.” 



“희수도?” 



“당연하지. 사랑스런 조카가 바다가 보고 싶다는데...어디 갈까?” 



“조카만 사랑하고 저는요?” 





그녀가 살짝 토라진 척한다. 자신의 마음도 몰라준다고 시위하는 듯하다. 다른 계획이 있지만 그녀를 좀더 놀려주고 싶다. 





“응? 너도 사랑하지. 그리고 너도 희수 좋아하잖아.” 



“하지만...그러면...” 





그녀가 또 얼굴을 붉힌다. 예전에 강남에서 잘나가던 그녀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일진 짱 “흑장미”가 아니다.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순진한 소녀의 모습이다. 사랑스런 그녀를 더 곤란하게 하면 안될 것 같다. 





“걱정 마. 희수는 다른 방에서 잘 거야.” 



“예? 어떻게 그래요? 나랑 자려고 할...” 



“누나가 함께 가면...모든 문제가 땡...오케이?” 



“아...그럼...” 





수경의 얼굴은 홍시처럼 붉어졌고 눈은 촉촉이 젖었다. 나는 그녀에게 여행계획을 대충 짜서 희수에게 연락하고 했다. 누나에게는 내가 대신 연락해서 허락을 구하겠다고 했다. 



대수는 수험생이라 함께 갈 수 없을 것이다. 누나의 선물도 전해줄 겸 누나를 찾을 생각은 있었다. 



누나에게 전화해서 점심시간에 간다고 말했다. 방학이라 희수가 학원에 가지 않으면 집에 있다. 누나와 육체적인 기쁨을 나눌 수는 없다. 정신적인 기쁨은 잠깐의 키스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랜만에 일식집과 마트에 가서 관리자들을 만났다. 



일식집은 여름에는 약간 비수기다. 모두 바다로 산으로 피서를 가는 통에 다른 계절에 비해 매상이 떨어진다. 정말 더운 한주는 모두 휴가를 줄 생각이다. 다음 주 쯤이 좋겠다. 



반대로 마트는 호황이다. 피서를 떠나기 전 왕창 세일되는 주류와 안주를 사는 고객들이 많다. 멀리 떠나지 않고 집에서 방콕을 즐기는 사람들도 그 세일에 편승해서 매상을 올려준다. 



쿵... 



마트에서 보고를 대충 받고 누나 아파트로 출발하는데... 



낯선 소리다. 



내 몸이 살짝 앞으로 숙여졌다 돌아왔다. 부딪쳤다. 내 운전경력 20년에 드디어 첫 접촉사고가 났다. 재밌었던 휴가에 이어 기분 좋은 하루가 깨졌다. 



앞을 보니 검은색 중형 세단이 내 차 앞 범퍼를 받았다. 운전자가 여자 같다. 살짝 긁힌 것도 아니 움푹 들어갈 정도로 세게 박았다. 



그녀의 실수가 99%이상이다. 



출발 전 시동만 걸도 정차를 내 차를 와서 들이 받은 것이다. TV에서 많이 보는 목을 부여잡는 어설픈 쇼는 안했다. 목이 아프지도 않다. 나는 차에서 내려 접촉부분을 봤다. 내 애마의 앞이마가 찌그러졌다. 



BMW Z4 3.0 



최근에 차를 바꿨다. 93년 소나타2를 사서 14년을 탔다. 차와 그 사람의 품위를 동일시하는 것을 비웃었다. 작년 연말모임에 갔다가 살짝 기분이 상해서 아끼던 소2를 차고에 넣어두고 새 차를 뽑았다. 



외제차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애국자는 아니지만 국산차에 더 애착이 간다. 이 차를 산 것에도 사연이 많다. 



나의 새 애마가 다쳤다. 



화가 났다. 일단 운전자와 얘기부터 해야겠다. 수리비가 문제가 아니다. 



똑똑... 



그녀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 



누구와 통화 중이었는지 핸드폰을 닫는다. 운전 중에 전화를 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창문을 두드리니 그제서 안전벨트를 풀고 내린다. 하이힐을 씻었다고 해도 키가 무지 크다. 



거의 170cm는 넘을 듯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모습이 그냥 아줌마는 아니다. 숏 커트한 헤어가 잘 어울린다. 새침한 듯 다문 입술이 섹시하다. 



그녀가 도도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따진다.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에요?” 





적반하장(賊反荷杖)... 



이럴 때 쓰는 고사성어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는지...간단하게 보험으로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내 성질을 건드렸다. 잘못은 그 쪽에서 했으면서 나를 몰아세운다. 내가 호구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 여자 잘못 걸렸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아닌가요? 가만히 있는데 덮쳐놓고...” 



“뭐라고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경찰 불러요.” 



“허...어이가 없네요. 보험처리로 간단히 끝내려고 했는데...불러요.” 





경찰을 불러봐야 그녀의 과실을 확인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거기다 여기는 내 홈그라운드다. 내 마트 주차장이고, 지역경찰과도 안면이 많다. 명백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좀 괘씸하다. 그녀가 전화를 누르다 접촉부분을 보다 전화기를 닫는다. 





“됐어요. 보험 처리해요. 외제차 타는 게 뭐 유세라고...” 





어이가 없다. 



그녀가 내 성질을 또 긁는다. 똥 밟았다 생각하고 그만 말을 섞어야겠다. 예쁜 얼굴과 달리 말하는 싸가지가 밥맛이다. 누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녀를 기다리게 하기 싫다. 



경찰 오고하면 복잡하다. 또 생각해 보니 내가 좀 불리하다. 그녀가 마트 고객이라면 내 사업장에서 싸워봐야 나만 손해다. 



나는 보험회사 전화를 넣었다. 



그녀도 어딘가 전화를 한다. 15분이 되지 않아 양쪽 보험사 직원들이 도착했다. 한가한 월요일이라 마트에 손님이 별로 없어 다행이다. 대충 연락처 주고받고 합의 보고 헤어졌다. 



내 담당이 내 차를 가까운 정비소로 가져갔다. 그녀도 몸에는 별 이상이 없는지 바로 떠났다. 



이경숙(李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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